부동산 스타트업, 특히 오프라인 리테일 비즈니스를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오프라인 리테일의 위기였어. 아마존(우리나라에서는 쿠팡일까)으로 대변되는 온라인 채널의 무서운 확장세로 오프라인 리테일의 존재 이유가 사라졌다는거야. 그것 뿐이게? 코로나 이후로 거리두기와 집콕문화가 깊숙히 자리잡기 시작했지. 오래된 힘숨찐 단골 가게가 없어지거나 주요 상권에서의 공실이 많아진 걸 곳곳에서 체감하고 있을거야.

아무리 위기라고 해도 내가 이제껏 해온 것도 공간이고 재미있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공간밖에 없는데 갑자기 IT 온라인 커머스로 훌쩍 가버릴 수는 없잖아. 내가 어렴풋이 체감하는 상업문화공간 비즈니스의 흐름과 비전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다시 주변을 설득해야하는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어.

그렇게 스타트업을 시작하며 비전으로 공간의 콘텐츠화, 경험 중심의 오프라인 공간 등 여러 키워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열 가지 말보다 하나의 실사례가 훨씬 도움이 되는 법! 코로나가 극심했던 2021년 2월, 여의도에 오픈한 ‘더현대 서울’은 (여러 업계에서 파급력이 있었겠지만) 특히나 부동산/공간 업계에서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어. 사실 오프라인 공간의 위기를 온 몸으로 맞아내고 있는 곳이 바로 대표적 오프라인 유통채널인 백화점이야. 사양 산업으로 회자되던 백화점이 180도 바뀐 새로운 아이덴티티로 성공적인 오프라인 리테일 공간을 만들어낸 건 누가봐도 혁신적인 사례였지.

실제로 더현대 서울에 방문했을 때도 굉장히 인상적인 공간 경험을 했던 터라,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해낼 수 있었을까 너무도 궁금했었거든. 그러던 마침, 이 책이 나온거야. <더현대 서울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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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서치만으로는 알기 힘들었던 내부 과정이나 전략을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있어서,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들었어. 책에는 아주 디테일한 고민과 실행안까지도 잘 정리가 되어있지만, 여기에서는 핵심 전략과 메세지를 위주로 책의 내용을 정리해보았어!



1. 지루한 공간은 죽고 가슴 설레는 공간은 산다

죽어가는 것은 오프라인 공간이 아니라, 고정관념이다. 지루한 공간은 죽고, 가슴 설레는 공간은 산다.

2015년, 논문 <모든 것의 아마존화 The Amazonation of Everything>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어. 이 논문은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쇼핑업체의 전투적인 성장이 전통적인 유통과 산업, 노동, 소비자에게 어떤 위협을 주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지. 유통은 공간 의존도가 꽤 높았던 영역이지만, 모순적이게도 온라인화가 가장 빨리 이뤄지고 있는 영역이기도 해. 그만큼 오프라인 유통 채널은 큰 위기를 맞닥들인 상황이지. 실제로 2021년에 우리나라에서도 쿠팡 등의 온라인 유통업체 12개사의 매출이 오프라인 유통사 13개사의 매출을 앞섰다는 통계가 나왔어. **‘리테일 아포칼립스'**란 용어까지 등장했지.

그 후에는 꽤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났어.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들이 온라인 분야를 강화하기 시작하고, 반대로 온라인 기업 역시 오프라인 유통으로 진출하기 시작한거야. 이 현상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 제일 중요한 사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채널이 서로 완전한 제로섬(zero-sum)이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도 명확해졌지. 온라인은 ‘필요’에 기반한 편의와 가격 경쟁력을, 오프라인은 ‘열망'에 기반한 재미와 경험을 핵심으로 집중하고 있어. 여기에 공간 비즈니스의 미래가 달려있어. 앞으로의 공간은 욕망이 살아나고 가슴이 설레는, 한마디로 ‘가고 싶은 공간'이어야만 해.

오직 트레디한 것만이 살아남는 법이야. 공급만 하면 팔리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전략적으로 잘' 팔아야 소비자가 눈길을 줄까 말까 하는 공급과잉시대가 됐잖아. 경제의 수준이 높아지고, 매체는 다양해지고, 트렌드는 빠르게 변하고 있어. ‘3년 차이면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 말도 과장이 아니지. 이럴 때에는 고정관념을 깨고 변화하는 흐름을 잘 받아들여야 해. 하지만 시장의 변화를 면밀히 살피기 이전에 더 중요한건 스스로의 강점과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는 거야. 이리저리 유행에 휘둘리다가는 오히려 휩쓸려나가버릴 수 있어. 나의 정체성을 붙들고서 빠른 변화의 흐름에 뛰어드는 것, 이게 핵심이라고 볼 수 있지.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예전처럼 단순히 ‘큰 돈 들여 멋지게 지어둔' 공간에 저절로 사람이 모이지 않아. 공간에 경험을 더하면 장소가 되는 것, 잘 알고 있지? ‘장소성'을 띄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공간 위에 개인적인 기억, 감정, 정체성의 동일시 등 무형의 가치가 더해져야 해. 이런 과정은 자연스럽게 일어나기도 하지만, 전략적으로 취향과 재미, 체험 등의 공간기획을 통해 달성할 수도 있어.